미국 픽사(Pixar)의 지속가능한 팀워크를 위한 3가지 원칙

1. 누구에게나 다른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2. 누구라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

3. 업계에서 일어나는 혁신 내용에 해박해야 한다.


픽사대학의 벽에 기록된 문자 하나 "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Alienus Non Diutius)"


"창조성은 협력을 통해 생겨나며 어떤 일에 대한 개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키스 소여(Keith Sawyer, 심리학자이자 경여컨설턴트)  "그룹 지니어스" 개념 주창


말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만이 YES라고 할 수 있다' 


"꿈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개꿈이다. 허황한 꿈을 꾸고 실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좋은 꿈은 실천을 강요한다. 노력이 요구되는 진짜 꿈, 그것은 이상"   철학자 강신주 SBS '힐링캠프' 강연 중...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왜 정치적이냐, 그것은 정치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이게 정치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역사를 왜곡한 것이고, 이게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 큐레이터 니콜라 피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무 이른 것은 없단다.
너는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데 시간 제한은 없단다.

지금처럼 살아도 되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최선과 최악의 선택 중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를 바라마.

네가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하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中



인맥이란?

1. 인맥이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알고 있냐는 것이다. 키포인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인정하고 있느냐이다.

2. 인맥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동적으로 당신과 소통하길 원하느냐이다.

3. 인맥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용하는가가 아니고,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돕고 있는가이다.

4. 인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 면전에서 당신에게 아첨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에서 당신을 칭찬하는가이다.

5. 인맥은 
당신이 잘나갈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떠 받들어 주는가가 아니고,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 하는가이다.



- 크리스천 재정 전문가 김동윤 장로 

지혜자는 사상을 얘기하고, 

일반인은 사람을 얘기하고, 

우매자는 사건을 얘기한다

지혜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장점을 찾아 격려하고, 

우매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단점을 들춰낸다.

 

 

"페스띠나 렌떼" - 천천히 서둘러라 (급할수록 마음은 침착하게)     - 어거스틴(354-430)

 

 

리더십은 낙차와 같은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멋진 것은 떨어지는 낙차와 그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낙차가 크면 클수록 멋진 폭포가 된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창조주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데 있다. 낮아지고 낮아져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  김창훈 목사(캄보디아 선교사)

 

 

 


매일경제  기사전송 2008-04-05 16:15


오래 전 만났던 강남의 알부자 가운데 전직 대통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테헤란로에만 대형 건물을 여러 동 가지고 있었고 개발하지 않은 땅까지 합하면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소나타를 타고 다녔다. 그 많은 재산을 일군 사람은 부친이었고 자신은 그저 관리인이기에 그런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의 부친이 웬만한 재벌 부럽지 않을 정도의 부를 형성한 과정을 물으니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 계속 사 모았던 땅 값이 올라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세계적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어떤가. 그 역시 개발되지 않은 땅을 싼 값에 사서 개발해 비싸게 팔아 부를 이뤘다. 그의 대표적 성공작인 그랜드센트럴하얏트가 그랬다. 그 뒤 콘도미니엄(한국의 고급맨션)을 세워 떼돈을 번 곳들도 이스트리버를 비롯해 맨해튼에선 변두리로 취급됐던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엄청난 부를 거머쥔 데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기다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강남 갑부의 부친은 평생 버는 대로 땅을 사들였다. 그가 노년이 됐을 때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트럼프 역시 기다림의 고수다. 회전이 비교적 빠른 개발 전문의 트럼프도 부동산을 산 뒤 20년 이상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장사를 하건 투자를 하건 돈을 버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한 가지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쌀 때는 사지 못한다. 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사태라고 부르는 이번 금융위기는 사실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더욱이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게임이기도 했다. 그런대도 대다수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3월 1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직접공급 방식으로 2000억 달러를 긴급 투입키로 했다. 유럽중앙은행이나 스위스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금융위기를 타개하는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런데도 주가는 수직으로 떨어졌다. 3월 17일엔 코스피가 장중 1500대 중반을 밑돌기까지 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신문엔 재미있는(?) 게 나왔다. 매일경제신문 1면 톱 제목은 ‘금융시장 패닉…’으로 나가고 있다. 시장이 투자자들의 비정상적인 심리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됐음을 나타내는 얘기다.

시장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으로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각국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얼마든지 돈을 풀 수 있다는 의지까지 보였으니 답을 다 가르쳐준 셈이 아닌가.

그 뒤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가파르게 빠졌던 만큼 오름세도 가파르다.

주가가 살아나면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온다. 주가가 폭등하면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든다. 이런 게임에서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는 뻔하다.

프로는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도 팔지만 아마추어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기는 좋은 방법은 진짜 쌀 때 사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최근 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싼 종목들은 많다. 인기 경쟁에 밀려서 내재가치 이하에서 머무는 것들도 숱하다.

그중에는 전도가 유망한 것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문제는 단기간에 소폭의 이익을 노리느냐, 아니면 5년 이상을 두고 배 이상을 기대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호흡을 길게 하면 새로운 투자대상이 보인다. 한 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강북 아파트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템플턴의 이머징마켓 부문 대표인 마크 모비우스의 얘기는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돈을 갖고 있을 때가 이머징마켓 투자에 가장 적합한 시기다.”

이머징마켓의 매력을 강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본다면 다양한 투자대상에 모두 적용되는 얘기가 아닐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23호(08.04.1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간동아   2008-03-26 09:41:36]
조직생활에서 상하관계는 숙명적이다. 신입사원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선배 또는 상사가 돼 후배들과 어울려 일한다. 그런데 언제나 ‘어색한’ 위계질서는 갈등의 불씨가 된다. 상사는 상사대로 부하직원이 성에 차지 않고, 후배들 역시 나름의 불만을 가슴에 새기며 출근도장을 찍는다.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와중에 누군가는 잠깐의 우쭐함을, 누군가는 가슴에 상처를 안아야 하는 모순적 구조에 봉착하는 셈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 또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직장생활에서 누군들 즐겁게 일하며 성공하고 싶지 않을까? 그간 우직하게 인간관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 쳐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성공의 목표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문수(60·사진) 킹웨이인재개발그룹 원장의 주장은 조금 색다르다. 그는 이제까지 변화의 대상이던 ‘부하직원’이 아닌 ‘직장상사’에 초점을 맞췄다.

꼴등에서 1등으로 ‘미다스 이문수 신화’ 탄생
“누구보다 ‘상사’가 먼저 변해야 인생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직장’이라는 성지(聖地)에서 모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현 대자동차(현대차) 초창기 시절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마침내 부사장 직위에 오르며 이 원장이 깨친 성공 노하우는 다름 아닌 “상사라면 마땅히 부하직원의 마음부터 얻으라”는 것. 비단 업무에서뿐만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인간적인 면까지 존경받을 때만이 기대했던 성과도 나오고 그에 따른 승진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급한 사람이라면 코웃음 치며 그 증거를 대라고 할지 모른다. 이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30년 직장인생을 펼쳐 보인다. 700명의 부하직원 이름을 외운 일, 이들과 작은 목표를 공유하고, 능력 있는 후배의 성공을 지원하고, 명령이 아닌 끊임없는 설득으로 동료들을 감화시켜온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 모든 정성들이 더해져 그간 현대차 꼴등 대리점들을 줄줄이 1등 대리점으로 변모시킨 ‘미다스 이문수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직장생활 전체를 현장의 영업사원으로 보낸 이 원장은 최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끌리는 상사의 조건’이란 책을 펴냈다. 그가 말하는 ‘부하직원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10가지 노하우’를 들어보자.


[부하직원 내 사람 만드는 10가지 비법]
“관리하지 말고 도울 생각 우선 … 리더는 힘든 일 자청해야”
한동안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1998년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암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라는 시련을 겪고야 진지하게 ‘행복’과 ‘성공’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됐다.
‘행복한 성공’이라는 키워드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문제로 연결된다. 권위주의 정권은 사라져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권위주의는 극복하기 쉽지 않다. 특히 큰 기업일수록 리더십의 변화에 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내 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성과를 내야 한다. ①`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하직원이 성공해야 한다. 어떤 최고경영자(CEO)든 입으로는 “인적 자원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지만 사실 ‘립서비스’일 때가 많다. 그간 성과를 위해 대놓고 직원들을 누르고 쪼아온 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능력 있는 직원일수록 다른 조직으로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상사로서 가장 시급한 덕목은 ②`직업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부하직원들이 올바른 비전과 뚜렷한 목표를 갖도록 제시해주면 상사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움직인다. 나아가 그런 비전이 공유된 조직이라면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 영업사원이란 자리에 별 보람을 느끼지 못했던 나도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애도 낳았고 가족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을까? 기왕 젊은 시절 회사를 다니는데 정말 잘해보고 싶다.”
놀랍게도 그 뒤부터 인생이 달라졌다. 성공하기 위한 첫 단추는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비전을 세우느냐에 달렸는데, 상사의 임무란 후배에게 목표와 비전을 갖게 만드는 것과 그 비전을 현실화하는 역량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비 전 외에 현실적인 목표도 중요하다. 나는 후배들에게 가시적인 목표로 ③`집을 사라는 원칙을 주입시켰다. 사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술을 마시게 되고 자연스레 저축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 결국 일도 열심히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집을 사려면 저축해야 하니 한두 시간이라도 더 일해 실적을 올리게 된다.
부하직원 가운데 총각이 많으면 결혼하라 닦달하고, 진급이 누락되면 그것을 메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사의 도리다. 후배들에게 목표를 만들어줘야만 진짜 선배고, 리더는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 같은 모습이 어색한 것은 기존 상사들은 조직을 무작정 ‘관리’하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배들은 몸만 따르게 된다. 옛날에는 권위가 있었기에 따라가는 시늉이라고 했지만, 이젠 권위마저 없으니 망가지는 것은 조직뿐이다. 이 때문에 이 시대의 상사는 조직을 ④`관리하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후배들을 도울 수 있을까? 1994년 서울 K지역 책임자로 부임했을 때 얘기다. 말 그대로 영업실적 최하위 지점이었다. 영업은 일선에서 하는 건데 나 혼자 고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직원들의 의욕인데, 그렇다면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스스로 ⑤`직원들을 기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아침저녁 사무실이 아닌 지점으로 출근했다.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700여 직원 모두의 이름을 3개월 걸려 외웠는데 그 효과는 대단했다. 술을 마시다 “어이 ○○대리, 이리 좀 와봐” 하고 등 두드려주고 술 먹어줬을 뿐인데, 그 직원이 거의 울려고 하는 걸 봤다. 그해 우리 지점은 영업실적 전국 1등이 됐다. 직원들을 격려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상사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면 직원들은 자연스레 상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업무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영업사원들은 서류업무에 미숙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내근직원들과의 분쟁도 적지 않게 일어나는데, 대부분의 상사들은 “왜 싸웠을까?”라고 묻기보다는 “화해하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이런 경우 내근직 사원에게는 ‘영업사원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교육시키고, 영업직원들을 위해서는 내부 업무 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은 상사의 의무다. 이게 바로 쓸모 있는 지원이다.
돌 이켜보면 이 같은 ⑥`사소한 불편이 직원들의 능력을 갉아먹더라. 시스템 문제가 아니더라도 더러운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성과가 좋을 리 없다. 상사가 나서서 “너희는 집이 이렇게 더럽냐”고 말하면 언제나 그대로 지저분할 뿐이다. 말없이 상사가 휴지를 줍는다면 언제나 깨끗한 사무실이 유지된다. 상사란 마땅히 ⑦`힘든 일을 자청해야 한다. 영업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직원들이 일요일에도 최선을 다해 일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작정 휴일에 나와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점장이 먼저 나오는 길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한번 아프고 나니 ‘시간’과 ‘일’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그냥 다닌다고 생각했지 나의 ‘역사’를 쓴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병상에서 투병생활하는 것보다 일하다 쓰러지는 편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파도 회사에 나왔다.
암 투병 직후인 2000년에 P지역 책임자로 발령이 났다. 어느 지점에나 ⑧`가정과 같은 직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후배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들이 각자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더니 그 진심이 통하더라. 일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후배들이 나를 형이나 부모처럼 따랐다. 나를 부모처럼 배려하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암도 완치됐고 예상치 못하게 부사장으로까지 승진했다.
30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이제 상사가 된 후배들에게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해준다. ⑨`직원을 아들이나 동생처럼 사랑하는가? 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⑩`고객을 진짜 나만큼 소중히 생각하라. 부하직원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상사의 존재는 헛것이 돼버린다.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은 실패하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의 일과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직장인들의 숙명이자 영원한 과제다.

방법 1

올해에 달성할 커다란 목표 다섯 가지를 종이에 쓴다


방법 2

그 중에서 당신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 하나를 선택한다. 그 목표부터 공략한다.


방법 3

이미 그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목표를 과거형으로 고쳐 쓴다.

이 방법은 당신이 달성한 목표를 보면서 미래에 느낄 감정을 미리 체험하게 한다. 이 순간, 당신은 정말로 그 일을 간절하게 원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중요한 일들을 빠짐없이 적어라.


방법4

생각을 여러방향으로 최대한 확장해서 20가지를 찾아내라.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루에 하나씩 또는 일주일에 하나씩(사안에따라) 실천하고 리스트에서 지워나간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해야할일들을 20가지씩 계속 추가하고 실천하는 이을 반복하라.

한번에 오직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라(한번에 모든일을 하려고 하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효율성과 집중도가 떨어진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상세보기
신시아 샤피로 지음 | 서돌 펴냄
회사가 당신에게 숨기고 있는 놀라운 비밀 50가지! 당신의 회사에 제거하려는 직원들의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려는 직원들의 명단이 있다면? 믿기 힘든 이런 일들이 당신의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회사는 직원들에게 회사 내 정책의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경력관리나 인사,노무, 성과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8-01-16 03:12 | 최종수정 2008-01-16 05:01 기사원문보기

[동아일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지 마.’ ‘된다는 증거를 대라.’

LG경제연구원은 15일 ‘혁신을 죽이는 말 한마디’ 보고서에서 조직의 혁신을 죽이는 대표적인 말 한마디로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혁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야 하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실행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지 마”=이 보고서는 우선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해서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 풍토를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잘 모르는 사람의 시각이 더 신선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된다는 증거를 대라”=혁신적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성과가 날 것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다그치거나 “비슷한 것 해 봤는데 안 됐어”라고 미리 김을 빼는 말도 ‘아이디어의 싹’을 죽이는 한마디.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어쩔까 하며 도전을 두려워하는 분위기에서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더라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내 업무가 아니다”=혁신 프로젝트가 생기더라도 구성원들은 기존에 하고 있는 일이 많아 “내 업무가 아니어서 관심 없다”고 말하기 일쑤다. 자신의 실적과 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욋일로 받아들이기 때문. 하지만 혁신 아이디어가 프로젝트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조직의 성공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하고 있어?”=의미 있는 혁신 프로젝트는 대개 규모가 크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사안도 많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관심도 눈에 띄게 약화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원활한 의사소통구조를 만들어 조직 내 밀착성을 높여야 한다. “아직도 하고 있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구성원들이 쉽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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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8-01-14 03:30:52] 

[동아일보]

‘또라이 제로 조직’ ‘역발상의 법칙’ 저자 로버트 서튼 교수 국내 첫 인터뷰

“또라이(asshole)와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라이가 미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또라이가 있는 조직보다는 없는 조직이 훨씬 낫다.”

인사 행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서튼(경영과학공학)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한국 경영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창의적 조직문화와 관련해 창의성과 ‘또라이적 기질’의 차이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또라이가 아닌 조직원들의 말을 경청(敬聽)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며 “과거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의존해서는 결코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충고한다.

‘또라이 제로 조직’ ‘역발상의 법칙’ ‘왜 지식경영이 실패하는가’ 등 수많은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는 서튼 교수는 최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평소 한국의 CEO들에게 가졌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서튼 교수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또라이’의 구별 및 관리 방법 등 ‘직장 내 또라이’와 관련해 서튼 교수가 맥킨지쿼털리에 기고한 글은 맥킨지와 동아비즈니스 파트너십 체결에 의해 15일 창간되는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상세히 소개된다.

○또라이를 창의력 높은 직원으로 보는건 오해

서튼 교수가 최근 다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해 발간돼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또라이 제로조직(The No Asshole Rule)’이라는 저서 덕분이다. 그는 ‘또라이’가 단순히 기업의 문제아 정도로 그치지 않고 상당한 손실을 입히는 위협이라고 지적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라이’ 한 사람으로 인한 조직 내 손실이 연평균 16만 달러(약 1억5000만 원)에 이른다는 추정치까지 내놓아 ‘또라이’가 조직문화 파괴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기회비용 손실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그는 ‘또라이’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CEO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개인적으로 잡스와 일하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분명 거절할 겁니다. 잡스가 성공한 것은 또라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독보적인 미적 감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극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서튼 교수는 “또라이를 창의력 높은 직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직 전체로 봐도 능력 있는 ‘또라이’가 조금 있는 것보다 전혀 없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

○건설적 논쟁 즐기는 리더라야 상사-부하 ‘윈윈’

‘또라이’와 터프한 리더는 종이 한 장 차로 둘을 구분 짓는 것은 바로 경청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는 것. 서튼 교수는 경청을 잘 활용한 리더로 인텔의 전설적 경영자였던 앤디 그로브 씨를 들었다.

“그는 한국의 많은 CEO와 마찬가지로 매우 권위적이었고 거칠었죠. 하지만 부하 직원으로부터 논쟁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도전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건설적 논쟁을 즐겼습니다. 결코 지위나 지식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지 않았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존경을 담아 그 부하 직원을 칭찬했죠. 이것이 바로 경청의 힘입니다.”

경청 외에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바를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능력을 꼽고 싶군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우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리더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라크전쟁과 관련해서요.”

서튼은 한국의 CEO들이 일방적 지시가 아닌 건설적 논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직까지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아시아식 기업 문화를 감안해도 지시에만 익숙한 리더로는 21세기 무한경쟁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유능한 직원들은 상사와의 자유로운 논쟁을 통해 존중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업무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토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수라는 것.

한국 경제의 샌드위치 위기론에 대해서는 ‘생각의 전환’을 주문했다.

“200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사람들은 저에게 샌드위치 위기론에 관련한 질문만 집중적으로 하더군요. 비록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중국이나 일본, 특히 중국과 경쟁을 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중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이고 특히 저가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누구도 중국과 경쟁할 수 없어요. 중국을 신경 쓰는 시간에 싱가포르식 발전 모델을 더 열심히 연구하면 어떨까요. 싱가포르는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성공 모델인 데다 국가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뛰어나니까요.”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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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7-05-31 14:58:53] 


[중앙일보 이지은] #1. 금융 회사에서 일하는 윤재윤(가명.36) 과장은 A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더 나은 급여 조건과 복지 혜택이 마음에 들었다. 필기시험과 두 차례의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만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전에 일하던 곳의 김모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재윤씨, A사에 지원했다며? 이것저것 묻길래 내가 재윤씨 능력있고 인간관계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했으니 걱정 마." "아! 다행이다."윤 과장은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 유통 회사에서 근무하던 김성탁(가명.35) 대리는 상사와의 마찰이 잦아 이직을 결심했다. B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한 달 후 최종 면접 통보를 받았다. 김 대리는 '곧 떠날' 회사에 애정이 식었겠다 새 직장도 구한 거나 다름없겠다 '개점 휴' 상태에 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옮길 건데 뭐…."김 대리는 병가를 내는 등 결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사무실 동료들은 그가 내팽개친 일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빴다. "저 친구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회사 옮긴다나봐""그래도 그렇지 맡은 일은 끝까지 다 해야 하잖아" 라며 뒤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연히 김 대리의 깨끗하지 못한 뒤끝은 B회사의 인사채용 담당자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기업이 전 직장의 상사.동료.부하 직원을 통해 지원자의 업무능력 및 근무 태도, 조직 적응력, 대인관계, 이직 사유 등을 검증하는 평판조회(Reference Check)가 이제 채용의 마지막 관문처럼 돼버렸다. 이력서만으로는 지원자의 자질과 인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허위와 거짓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최근 국내 기업들이 경력 사원 공채에서 평판 조회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이력서나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평판조회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왜 평판조회가 늘어나는가. 이에 대한 대응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내 평판은 어떻게 조회되는가.

◇'하자' 있는 사람은 원천 차단

기 업 인재 채용에는 '3의 법칙'이 있다. 최소한 3차례 면접을 보고 각기 다른 3곳의 장소에서 만나고, 3명 이상이 면접에 참여하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예전 동료나 상사 3명에게 지원자에 대해 물어보라는 것. 이력서 제출, 필기시험, 1대1 면접, 집단 면접 등 다양한 단계로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에서 평판조회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서류 검토와 30분 내지 1시간 정도의 면접만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제대로 판별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예전엔 사람을 판단하는 절차는 단순한 이력서나 전 직장에서의 근무 확인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후보자의 품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십, 도덕성 등을 조사, 직장 내 인간관계나 고객과의 관계, 회사에 대한 책임감, 직무방식이나 조직운용 방식, 실적과 업적 등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전직장에서의 모든 것을 파악해 회사에 유.무실로 손해를 끼칠 지원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평판 중요

핵심 간부를 외부에서 영입할 때 평판조회는 '필수'다. 부장급은 임원인 직속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화의 기술이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또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아는 능력, 결정된 사항에 대한 추진력, 후보자의 대인관계와 도덕성에 특히 관심을 갖는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대인관계가 좋지 못하면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최고경영자(CEO)를 스카웃하는데 까지 평판조회가 이용되고 있다. 스카웃 제의를 하기 전 그 사람의 실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도덕성 등을 그가 거쳐온 전 직장 동료 및 상사 50여 명에게 물어 최고경영자로 영입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와야 비로소 손을 뻗치는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직장인은 평판을 남긴다

직장을 옮기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상사와의 갈등을 이직 사유로 꼽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절대 싸우고 나오지 말라''뒷모습을 아름답게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이직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다른 조직원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또 전 직장 상사나 동료를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법이다. 업무 인수인계는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중간에 관두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평판은 금방 업계에 퍼지게 마련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이직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이직자의 공백을 메워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직할 때 같은 업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회사 기밀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닌다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상사나 동료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깨끗이 풀고 가야 한다. 응어리가 남아있는 동료나 상사에게 평판조회가 들어온다면 좋게 말할 리 만무하다.

이직이 확정됐다면 떠나기 전 동료에게 술 한잔 사고 가는 센스도 필요하다. 이직한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 다른 회사로 옮길 때 분명 지금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의 평판을 묻는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 헤드헌팅 커리어 케어의 신현만 사장은 "한국 사회는 매우 좁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돼 있다"며 "떠나는 뒷모습을 아름답게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머니투데이 강기택기자][삼성물산 46기 한 신입사원의 사직서]

삼성그룹 계열 삼성물산에 다니던 한 신입사원이 '회사가 냄비 속 개구리가 되고 있다"는 쓴소리를 담은 사직서 내용이 지난 30일 그룹내 사내 게시판 '싱글'에 올려진 뒤 확산되고 있다.

이 신입사원은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한다"며 사직서를 시작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

입 사 1년을 간신히 채웠다는 이 전직 삼성맨은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다"며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제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 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라고 회의했다.

그 의 소신에 따르면 "(종합)상사가 살아남으려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해야"하는 곳이다.

또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의 그의 변이다.

그는 회사를 통해서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됐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됐다"고도 말했다.

아울러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도 토로했다.

이 전직 삼성맨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속 개구리의 비유"였다고 한다.

"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되는데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 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간다"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는 썼다.

그 에 따르면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이며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얘기다.

이 전직 삼성맨을 더욱 좌절하게 한 것은 이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라는 게 그의 육성이다.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갔다는 것.

그는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다고도 했다.

그 는 "많은 분들이 회사 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고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지만 자신을 지켜낼 자신이 없고, 또 회사가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라며 떠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이라며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의 그의 마지막 바램이었다.

한편 이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그룹 게시판에 나돌자 삼성그룹은 관련내용을 즉각 삭제했다는 후문이다. 아래는 게시판에 올랐던 이른바 '사직서' 전문이다.

[삼성물산 46기 신입사원의 사직서]

1년을 간신히 채우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재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회사를 통해서 겨우 이해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니부어의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되었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속 개구리의 비유입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 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문화를 이루고,

문화가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변혁의 움직임이 있으려니,

어디에선가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려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쥬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입니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인사팀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이거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에,

다들 이번 주에 어디가야할까 고민하고,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개념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열정 하나만 믿고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병도

1년만에 월급쟁이가 되어갑니다.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저는 음식점에 가면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종업원들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종업원들의 열정이 결국

퍼포먼스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당 서현역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가면

얼음판에 꾹꾹 눌러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주문할때부터 죽을 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힘들다는건 알겠습니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돈내고 사는것인데도

오히려 손님에게 이런건 왜 시켰냐는 눈치입니다.

정말 오래걸려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도,

미안한 기분도 없고 먹고싶은 기분도 아닙니다.

일본에 여행갔을때에 베스킨라빈스는 아닌 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에서

똑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습니다.

꾹꾹 누르다가 힘들 타이밍이 되면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종업원이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미는 손도구로 얼음판을 치면서

율동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 손님들은 앞에 나와서 신이나 따라하기도 합니다.

왠지 즐겁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맛있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아이템입니다.

같은 조직이고, 같은 상황이고, 같은 시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루하루 적응하고 변해가고,

그냥 그렇게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제가 두렵습니다.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지 않습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에 반복되어져서는 안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말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직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고쳐보고자 최선의 최선을 다 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들으시면

회사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직을 가던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제가 명확하게,

저를 위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웃으면서 동참할 생각도 없고

그때그때 핑계대며 빠져나갈 요령도 없습니다.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에 남아서

하루라도 더 저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이 회사는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것 하나 있겠냐만은

제발 저를 붙잡고 도와주시겠다는 마음들을 모으셔서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사랑해서 들어온 회사입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라고 믿기에,

현재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

유일한 순간이라고 믿기에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2007년 5월 2일

강기택기자 acekang@

<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

동전과 기도문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같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단신의 얼굴에는 항상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적을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이웃은 당신을 존경하고

불행은 당신을 아는 체도 하지 않기를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이미 당신이 천국에 가 있기를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아름다운 축복을 비는 켈트족의 기도문|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우직함과 함께

             (항상 갈구하면서, 우직하게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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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Steve Paul Jobs)
학력 : Homestead High School - Reed College
약력 : 1976년 워즈니악과 애플컴퓨터 설립.
         1986년 픽사 인수.
         1996년 애플 경영 컨설턴트로 복귀.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got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is the start in my lif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 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 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점들이 연결돼 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도록 하는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마음을 따르는 일이 여러분을 탄탄대로에서 벗어나게 할지라도, 그로 인해 인생의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And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thankfully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우직함과 함께

(항상 갈구하면서, 우직하게 살아가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원표 이상네트웍스 대표

우리 회사에는 젊은 여자 부장 P가 있다. 나이는 만 30세. 대학졸업 후 6년 동안 한 회사에서만 일했다. 창업 2년 만에 회사가 어려워 서울에서 경기 안산 시화공단으로 옮겼을 때도 묵묵히 따라와 열심히 했다. 하루 출퇴근 3시간, 매일 왕복 100㎞의 출퇴근 거리를 감수했다. 최종 학력은 대졸. 그 흔한 석사학위도 없다. P가 상장회사의 부장이 된 것은 지난해, 만 29세 때 일이다.

  또 우리 회사에는 만 35세 된 남자 과장 C가 있다. 나이로 보면 과장 정도는 당연히 할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사회경험이 3년 조금 넘는 초병이다. 지방대학을 나와 유학에 실패하고 30세를 훨씬 넘긴 나이에 회사에 지원했다. 그때 C는 “다시 시작하게만 해주십시오. 열심히 한 뒤에 다시 평가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항상 남보다 두 배는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유형의 인재들이 우리 회사에는 꽤 많다. 특히 우리 회사에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 회사가 2000년에 설립되고 2001년 벤처 거품이 빠지던 시절, 우리는 시화공단으로 이사 갔다. 월세 200만원으로 좋은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력 리쿠르트였다. 회사를 키우려면 사장보다 훌륭한 인재를 뽑아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다. 지역적으로 안산 시화공단에 있다 보니 인재구경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을 선호했다. 아무리 똑똑한 여성이라도 우리나라에선 남자보다 기회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거꾸로 이용해 여성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P와 같이 능력 있는 여성인력을 많이 뽑은 것이다.

 서울 유명대학 법대를 나와 고시공부를 하다 취업기회를 잃은 20대 후반의 여성인재도 있었다. 이 사람은 면접 때 자신의 처지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봉투’와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인재는 지금 B2B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프로세스 기획자가 되어 있다.

 남자 직원들도 C와 같은 경우가 많다. 인생에서 항상 옳은 선택만 하면서 편안하게 잘 살아온 사람이 드물다.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한때 고생 많이 한 사람, 능력은 넘쳐 흐르는데 인생 초기에 잘못된 길을 가다가 출구를 못 찾은 사람이 많다. 출발은 늦었지만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을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외인 구단’이라고 부른다. 그게 우리 회사의 인사 원칙이 됐다. 이른바 ‘三無原則(삼무원칙)’. 우리에겐 남녀의 차별이 없고, 나이의 많고 적음이 직급과 관련 없으며, 학력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업 담당자는 1년에 5만㎞ 이상을 운전하기도 한다. 고속도로 통행권 사용금액이 월 40만원이 넘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사흘 이상을 지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출장을 밥 먹듯이 다닌다. 그런데 이들의 얼굴은 항상 맑다. 전화를 받으면 항상 ‘솔’ 톤으로 즐겁게 받는다. 이런 문화가 ‘이상네트웍스의 DNA’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동영상을 검색하다가 애플사 CEO인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입양아이면서 대학 중퇴자인 불행한 삶의 이력, 자기가 오너인 회사에서 쫓겨난 치욕스러웠던 사건, 암 판정을 받으면서 인생을 새롭게 생각한 일 등등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연설이었다. 그는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구하면서, 우직하게 살아가라)”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가슴에서 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일을 우직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동영상을 회사 월말 경영회의 시간에 우리 직원들과 함께 보았다. 우리 직원들은 14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숨죽이며 봤다. 그리고 동영상이 끝나자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다. 아마 자기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본인의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회사에는 이런 연설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고맙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큰 대기업이 되더라도 이런 문화가 우리의 DNA로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원표 이상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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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보고있는 전자신문 어제꺼를 읽다가 발견한 기사입니다.
정말 제 가슴을 팍 치는듯한 기사였습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 중 선택에 관한 부분에 대해 정말 잘 예를 들어주는, 또한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이라는 좋은 소스까지 제공해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사실 저도 요즘 여러가지로 고민이 많습니다. 정말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정말 맞는 것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것(아... 그것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정말 바른 선택인가?...
현재 지금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아니, 앞으로 매일매일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오늘,내일, 이번다, 또 그다음달, 올 1년 2년........

요즘 정말 저에게 지혜가 얼마나 없는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지혜없이 미련한 삶을 살아왔는지....
정말 답답한 마음입니다. 없는 지혜로움이 원한다고 생기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들어서는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을 때 다른 무엇보다 "지혜"를 구한 것이 조금은 이해됩니다.
요즘 월단위로 계속 돌아가면서 매일 잠언을 한장씩 읽고 있는데...ㅎㅎㅎ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저에게 지혜를,명철과 총명을 주소서....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의지할 것은 오직 지혜뿐

유태인의 격언 중에,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남고 싶다면 먹는 것으로도, 마시는 것으로도, 춤을 추는 것으로도, 또는 일하는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오직 지혜를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인 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유태인은 그야말로 온갖 박해를 받으며 생존해 왔다. 그런 유태인에게 만약 지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중세 유럽 시대의 유태인은 토지의 소유를 금지당했고, 직능별 조합인 '길드'에마저 가입할 수 없었다.  유태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오직 의사나 상인뿐이었다고 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어 편히 살거나,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지혜를 터득해서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길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전 <탈무드>에는 '유태인의 유일한 재산은 지혜'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우화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를 들어보자.

거 부들만 타고 있는 배에 '랍비' 한 사람이 편승하고 있었다. 부자들이 서로의 재산을 비교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가장 유복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보여드릴 수가 없군요."
 
그 로부터 얼마 후, 해적의 습격을 받게 되어 부자들은 가지고 있던 재물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마침내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 그는 학생들을 모아 학교를 만들었다. 그러곤 단번에 거부가 되었다. 함께 배를 타고 왔던 부자들은 이미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있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랍비'가 한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라는 속담처럼, 지혜를 갖지 못한 자의
부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from http://cafe.naver.com/dooraesociety/271


오늘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군요....
대략 요약해보면.....


[머니투데이 박희진기자]"인맥이 없어서..."

보통 사람들이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21세기 온라인 시대에 인맥 타령은 한낱 핑계일 수 있다.

인터넷이 새로운 인맥 형성의 장이 되고 있기 때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22일자)는 고정칼럼 '창업주가 알아야할 것'을 통해 "예비 창업자들에게 인터넷 인맥 구축 사이트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창업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족한 '네크워크'를 보완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

벤처 투자자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가이 코바사키는 "촉망받는 기업주는 인맥 사이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온라인 인맥 사이트 '링크트인'(LinkedIn)을 소개했다.

'링크트인'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이트로 '페이팔' 전 부사장 출신인 레이드 호프만이 세운 벤처업체다.

네티즌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링크트인에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130개국에서 850만명 이상의 고급 인력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인재 시장이 됐다.

최근 포춘 선정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오른 구글 직원들도 링크트인에서 만날 수 있고 하버드 등 유명 MBA 소지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코바사키는 "링크트인에서 20명 이상의 '인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5명 미만인 사람들에 비해 고용기회가 무려 34배가 많다"고 말했다.

링크트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코바사키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링크트인이 유용하느냐는 질문에 총 6517명 중 69.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유용하지 않다'고 답한 경우는 20.21%에 그쳤다.

박희진기자 behappy@


라는 건데....

이런 사이트가 한국엔 없는가? 궁금하군요....

뭐 하여튼, 인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실제로 인맥을 관리하는데 그 중요성 만큼 공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는거....

저도 역시 그런 상태니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걸 요즘들어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서도 활동해보고 하는데 이게 그냥 취미 차원이지 비지니스 차원의 인맥을 가지는 거하고는 또 다르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옛말에 유유상종이라고.... 부자가 되려면 부자하고 친하라는 말도 있는데...

진짜 2007년엔 열심히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7가지 원칙 
                          from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1.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라.
분명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성공의 첫걸음이다.
   
2. 당신이 원하는 것을 종이에 쓰라.
아주 자세하게 쓰라. 그리고 언제까지 그것을 성취하겠다고 최종 시한을 설정하라.
필요하다면 단계별 최종 시한을 설정하라.
   
3.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부가적인 지식, 기술, 능력 등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획득할 것인지 결정하라.
   
4.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과 장애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어려움의 정도와 중요성에 따라 정리해보라.
   
5.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단체, 조직 등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얻으려면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하라.
   
6. 우선 순위와 중요도에 따라 정리한 상세한 계획표를 만들라.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덜 중요한가?
   
7. 계획을 즉각적으로 실천에 옮겨라. 목표를 향해 매일 무엇인가를 해내라.
관성의 법칙에 따라 탄력이 붙게 될 것이다. 그 탄력성을 계속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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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1. http://blog.daum.net/mbs4688     2. http://ks.hmall.com/pf/top/qa_detail?eid=06b2c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신중할지어다.

그러나 말수는 적어야 하느니라.

묻는 사람이 없거든 절대 입을 열지마라.

물음을 받거든 당장 간단히 대답하라.

행여 물음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그것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 이슬람 수피파의 잠언



악수나 목례로 인사를 마쳤다면 필요한 대화가 오고갈 것이다.

인사가 서로에 대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라면, 대화는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드러냄의 표현이다. 서로의 교류이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물의 일등공신이 바로 대화이다.

말 한마디 잘못 해서 일이 어긋나거나 관계마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천냥 빚도 한순간에 갚아버릴 수 있는 것이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생산적일까?

눈에 거슬리지 않는 인사법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면 대화법 역시 마찬가지다. 




· 상대의 말을 가급적 많이 들어주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듬을 깨버리거나 심지어 반박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상대는 무엇보다 상해버린 기분에 더 중요한 말을 내뱉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급하고 예의없는 당신의 행동에 신뢰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고, 일을 맡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 말수를 줄이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끊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말이 적을수록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한낱 말솜씨는 회의가는 낳게 할 수 있지만 철학자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말을 기억하자. 과거를 들추며 요란하게 치장하는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 사고하는 인간형이 바람직하다.


말이 많아지면 가벼운 수레가 내는 소음으로 밖에는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 지나친 침묵은 돌이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듣기만 하는 것은 돌이 된다.


대화중에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상대와 처음 대면하는 자리이고 무언가 일을 추진하기 위한 순간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상대는 침묵하는 당신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게 수긍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생산적인 대화법이다.


마구 지껄이는 사람은 고장나서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와 같다고 한다. 반면에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는 시계와 같다.


 


· 상황에 맞게 대답하라.


무턱대고 상대의 말 끝마다 ‘예’라든가 ‘맞습니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듣고나서 상대가 한 말을 기억해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이다. 상대에게 그 말을 재확인시켜 줄 때 슬쩍 꺼내는 것이다. 그럼 상대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고 당신의 배려에 감사를 할 수도 있다.


 


· 대화를 할 때 중요한 것이 시선 처리이다.


세일즈를 할 경우 팔고자 하는 제품을 놓고 창밖을 보면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객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시선처리가 중요하다. 상대에게 꼭 필요한 제품임을 은연중 암시하는 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제품에 대한 설명을 다 했다고 해서 세일즈가 끝난 것이 아니다. 본격적인 세일즈는 그때부터임을 명심하자.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고객의 시선을 응시하되 너무 뚫어지게 본다는 인상은 주지 말아야 한다. 어색하다고 해서 앞에 놓인 제품이나 카다로그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것도 금물이다.


가급적이면 어떤 지적이나 요구사항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로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상대와의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주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 수명이 오래 가는 삶의 베터리다. 행여 그 자리에서 상대와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당신은 믿음만은 남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이란 언제든지 찾아오는 기회이지만 한번 잃어버린 믿음은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기’를 보면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해도 새이며, 원숭이가 아무리 흉내를 잘내도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람의 예를 갖추지 못한다면 앵무새나 원숭이와 다를 게 없다.


좋은 지식은 언어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을 가르치는데 있어 가장 능숙한 사람은 언어를 잘 쓰는 사람이며, 학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훌륭하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가 황폐하다는 것은 정신이 황폐하다는 말과도 같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우리의 속담도 한번 짚어봐야 한다. 신중하고 현명한 대화법으로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성공의 가능성은 열린다.


성공하는 대화법 10가지


1. 인사말은 명확해야 하며 경직되지 않은 평온한 얼굴로 한다.


2. 가슴은 펴고 고개는 든 채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한다.


3. 상대와의 거리는 1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4. 상대의 눈을 보며 시종일관 정중한 자세를 지킨다.


5. 건조한 말투보다는 리드미컬하게 표현한다.


6. 항상 존칭을 잊지 말고 긍정적인 표현을 쓴다.


7.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예’와 ‘아니오’의 구분을 확실히 한다.


8. 중요한 부분에서는 강조의 엑센트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9. 상대가 제시한 핵심포인트에 대해 한번 더 질문해 신뢰를 얻는다.  


10. 대화를 마칠 때도 명확히 하며 예의바른 인사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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