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장애인 인권의식 없는 판사와 법률 시스템이 빚어낸 장만석 씨의 ‘딱한 재판’

▣ 상주=글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판사가 무… 무서웠어요.”

장만석(58)씨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다. 정신지체 3급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이다. 장씨는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법 한다. 그는 지난 7월12일 상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신이 일했던 양계장의 주인 박아무개(62)씨를 ‘기초생활수급비 횡령 및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이하 연구소)에 의뢰해 이뤄진 재판이다. 그런데 장씨는 재판정에서 “너무 무섭고 겁이 났다”며 몸을 떨었다.

양계장 청소하며 장애 수당도 뺏겨

장씨는 역시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부인과 함께 경북 상주에 있는 한 양계장에서 1988년 3월부터 18년 동안 일했다. 숙식은 양계장에 딸린 집에서 해결했다. 200평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양계장 주인을 빼고는 장씨 부부뿐이었다. 이들은 계분 청소와 계분을 포대에 담아 5톤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그러나 주인 박씨는 장씨 부부에게 임금은커녕,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까지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장씨 부부는 2000년 10월부터 매월 30만원가량의 생계비와 각 2만원씩 장애 수당을 지급받았다. 2006년까지 장씨 부부와 정신지체장애 2급인 둘째아들 몫(장애 수당 7만원)으로 지급된 돈은 모두 1800여만원. 그러나 장씨 가족은 이런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5월께 상주시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자신의 통장을 소유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때, 장애가 없는 큰아들 장선갑(24)씨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 돈을 받아온 이는 양계장 주인 박씨였다. 선갑씨는 연구소에 이 일을 알렸고, 그렇게 해서 7월12일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재판은 순조롭지 않았다. 재판정은 장씨에게 낯설고 위압적인 곳이었다. 이혜영 연구소 간사는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증인들에게 판사 앞에 일렬로 서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장만석씨가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며 “판사석은 일반인들이 앉는 의자에 비해 높기 때문에 비장애인에게도 그렇겠지만 장씨에게는 굉장히 고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축된 상황에서 장씨는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이 쏟아지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검사가 “월급을 얼마 받기로 약속하고 양계장 일을 하기로 했나?”고 묻자, 장씨는 처음에 “15만원”이라고 답했다가, 나중에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번복했다. 양계장 주인 쪽 변호사가 “장만석씨, 배운 대로 대답하지 마시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주세요. 양계장 사장이 보살펴주고 밥 먹여주기로 하고 일을 한 거죠?”라고 묻자, 장씨는 “예” “아니오”하며 쩔쩔맸다. 이를 듣고 있던 신아무개 판사가 장씨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판사: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답하는 거예요?

장씨: ….

판사: 잘 모르고 답한 거예요? 뭘 물어보는지 이해하고 답했냐고요.

장씨: 모르겠어요

판사: 그럼 그냥 ‘예’ 한 거예요?

장씨: ….

판사: 아이참, 장만석씨 겁먹지 말고 저분(검사)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답했냐고(묻잖아)요. 농장 가서 일했다면서요.

장씨가 계속 대답을 못하자 판사는 검사에게 “저분(장만석씨)이 말한 게 소용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판사의 고함에 겁먹은 장씨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 커졌다”는 판사

그때의 상황에 대해 장씨는 기자에게 “(판사가) 겁줬어요…. 그래서 대답을 잘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재판정에 같이 있던 아들 선갑씨는 “판사가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의 지능지수가 얼마나 되나? 이런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증거로) 인정하나?’라고 물을 때,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아 속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재판을 함께 지켜본 이혜영 간사는 “판사가 장씨에게 고함을 질렀고, 어투가 짜증스러웠다”고 전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신아무개 판사를 만났다. 8월7일 상주지방법원에서 만난 신 판사는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장씨가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 ‘예’와 ‘아니요’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했고, 대답에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답변이 오락가락하면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됐고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커진 것 같습니다.”

장애인을 ‘답답해’하는 판사와, 판사를 ‘무서워’하는 장애인의 ‘딱한 재판’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혜영 간사는 장애인을 위한 법률 시스템이 없고, 장애인에 대한 사법 당국의 인권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판사가 오히려 고압적으로 장애인을 대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나라 판사들의 장애 인식이 수준 이하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연구소는 7월31일 ‘판사들의 장애 인식 수준이 실망스럽다’는 보도자료를 내, “장애인을 재판할 때 장애 관련 자문을 의무화하고 판검사들은 장애인 인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구소 김희선 팀장은 “재판을 할 때,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신뢰관계에 있는 자가 재판에 동석할 수 있다’라는 점을 제외하고, 배려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제도적으로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전문 변호사나 판검사 등 사법 영역에서 장애인 전문가가 없는 것도 ‘딱한 재판’을 낳는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지난 3월6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됐는데, 앞으로 만들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수사 과정에서 한 번 진술한 내용이라도 이후 법적 증거로서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몰라요’ ‘없어요’라는 말 뿐

양계장 일을 그만둔 장만석씨는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18년 동안의 고된 노동으로 건강을 잃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한동안 밥도 못 먹고 구토 증세로 고통을 겪다가 지난 4월에 위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 때문에 군데군데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빠졌다. 이도 다 썩었다. 장씨는 지난 18년을 이렇게 말했다. “일하느라 힘들었어요. 근데 (주인은) 욕만 많이 해요. ‘개새끼, 때려 죽여뿔까’ 하고. 망치로 맞았어요. 등을 때렸어요.” 그러나 장씨는 경찰 조사나 재판정에서 이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무서워서 ‘몰라요’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조사나 재판을 받으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법조인이 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사법기관이 오히려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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