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7-03-13 23:09:22] 

전문가들이 말하는 ‘남자아이 키우는 법’

심리학자들 사이에 농담처럼 떠도는 퀴즈 하나. 다음 중 수명이 가장 짧은 사람은 누구일까? ①딸만 둘 키우는 엄마 ②아들만 둘 키우는 엄마 ③딸 하나, 아들 하나 키우는 엄마. 정답은 당연히 ②번이다. 그만큼 아들 키우며 살기 힘든 시대여서일까. 같은 나이라도 여자아이들에 비해 발달 속도가 느린 남자아이들은 교육이 본격화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과 감성적 체험 활동, 꼼꼼한 숙제를 요구하는 7차 교육 과정이 남학생들에게 불리한 것도 사실. 일선 교사들은 “목소리 크고, 딴짓 하고, 산만한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애들”이라며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과제물을 제때 해내는 여자애들에 비해 자주 혼낼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어수룩한 우리 아들, 잘 키우는 비결은 없을까?

◆남녀는 발달 속도가 달라… 초등학교때 남자아이는 원래 느리다

숙명여대 아동학과 유미숙 교수는 “남자와 여자는 발달 곡선 자체에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와 똑같은 기대를 하며 교육하거나 양육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대체로 초등학교 때까지는 여자아이들이 감성은 물론 언어 표현 능력, 사회성이 빠르게 발달해 남자아이들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실제로 정서장애·행동장애·발달장애가 남자아이들에게 2~5배 더 많다는 게 국내외 소아정신과 학계의 통계다.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다. 발달 속도는 성차(性差)보다 개인 차가 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 문제는 “한번 뒤처지면 영원히 뒤처진다”고 믿는 부모의 성급한 양육태도와 강박관념이다. “지금 아이에게 표현되는 능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탓에 아이의 부족한 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아이 스스로 ‘나는 못할 거야’ 하며 자신을 일찌감치 평가절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작은 소리로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 저자인 일본 교육자 마쓰나가 노부후미는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에너지,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힘, 엉뚱한 일을 생각해내는 힘,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들(남성성)의 특성을 딸이었던 엄마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기교육은 독(毒)…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라

남자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노부후미는 “남자아이의 학습능력을 높여주는 것은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몸을 던져 충분히 놀아본 경험이지 조기교육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머리에 떠오른 재미난 발상, 엉뚱한 생각을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겼다가 실패를 맛보면서 남자아이들은 추진력과 창의력을 키워나간다”는 것. 물론 중독성 강한 컴퓨터 게임은 제외다. 차라리 머리를 쓰는 체스나 장기, 트럼프 게임이 낫다.

신철희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놀이에서의 아버지 역할을 강조한다. “무턱대고 ‘좀 더 남자다워져라’ ‘씩씩해져라’ 주문하기 전에 아빠가 퇴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주말을 이용해 아이와 에너지를 발산할 놀이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삼촌이나 친척 형들과 어울릴 수 있게 가족 기념일을 활용해보세요.”

 ◆책가방 직접 싸고, 집안일도 돕게 하라…학습능력이 쑥쑥!

베테랑 교사들은 남자아이들에겐 정리정돈하는 습관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연가초등학교 정현주 교사는 “제 물건 사물함에 잘 챙기고 책상 정리만 잘하게 훈련시켜도 집중력이 커져 여학생들의 학습능력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가방 싸기부터 숙제까지 부모가 알아서 다해주는 건 아들을 망치는 지름길. “초등학교 1학년이어서 가방 싸기가 서툴면 엄마가 도와주되 책과 학용품은 아이가 직접 넣도록 해야 합니다.”

집안 일을 거드는 경험은 자율성을 키우는 동시에 공부에 요령을 터득하게 해준다. “수저나 그릇 놓기, 식사가 끝난 뒤에 빈 그릇 옮기기처럼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 설거지, 걸레질까지 아이의 나이와 능력에 맞춰 집안일을 거들게 해보세요. 그릇을 크기별, 용도별로 분류해본 경험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 도움이 됩니다. 요리 좋아하는 아이는 과학을 잘할 수밖에 없고요. ”

◆혼낼땐 큰 소리로? 절대 금물. 잘못을 조목조목 냉정하게 따져라

교단경력 26년의 정현주 교사는 “남자아이일수록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타일러야 말을 듣는다”고 귀띔한다. 노부후미는 “남자아이를 야단치는 효과적인 방법은 논리에 맞게 말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왜 그런지,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딸들은 부모가 화난 이유를 ‘직관’으로 먼저 느낀 뒤 처신하지만, 아들들은 부모가 화를 내는 이유를 ‘머리’로 깨닫기 전까지는 행동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부후미는 또 “아들에게는 화보다는 차가움이 통한다”고 주장한다. “아들을 야단칠 때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논리를 세워서 설득하되 그래도 효과가 없다면 무시 작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엄마가 나를 냉정하게 대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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