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기사전송 2008-04-05 16:15


오래 전 만났던 강남의 알부자 가운데 전직 대통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테헤란로에만 대형 건물을 여러 동 가지고 있었고 개발하지 않은 땅까지 합하면 그의 재산이 얼마나 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소나타를 타고 다녔다. 그 많은 재산을 일군 사람은 부친이었고 자신은 그저 관리인이기에 그런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의 부친이 웬만한 재벌 부럽지 않을 정도의 부를 형성한 과정을 물으니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 계속 사 모았던 땅 값이 올라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세계적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어떤가. 그 역시 개발되지 않은 땅을 싼 값에 사서 개발해 비싸게 팔아 부를 이뤘다. 그의 대표적 성공작인 그랜드센트럴하얏트가 그랬다. 그 뒤 콘도미니엄(한국의 고급맨션)을 세워 떼돈을 번 곳들도 이스트리버를 비롯해 맨해튼에선 변두리로 취급됐던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엄청난 부를 거머쥔 데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기다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강남 갑부의 부친은 평생 버는 대로 땅을 사들였다. 그가 노년이 됐을 때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트럼프 역시 기다림의 고수다. 회전이 비교적 빠른 개발 전문의 트럼프도 부동산을 산 뒤 20년 이상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장사를 하건 투자를 하건 돈을 버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한 가지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쌀 때는 사지 못한다. 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사태라고 부르는 이번 금융위기는 사실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더욱이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게임이기도 했다. 그런대도 대다수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3월 1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직접공급 방식으로 2000억 달러를 긴급 투입키로 했다. 유럽중앙은행이나 스위스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금융위기를 타개하는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런데도 주가는 수직으로 떨어졌다. 3월 17일엔 코스피가 장중 1500대 중반을 밑돌기까지 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신문엔 재미있는(?) 게 나왔다. 매일경제신문 1면 톱 제목은 ‘금융시장 패닉…’으로 나가고 있다. 시장이 투자자들의 비정상적인 심리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됐음을 나타내는 얘기다.

시장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으로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각국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얼마든지 돈을 풀 수 있다는 의지까지 보였으니 답을 다 가르쳐준 셈이 아닌가.

그 뒤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가파르게 빠졌던 만큼 오름세도 가파르다.

주가가 살아나면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온다. 주가가 폭등하면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든다. 이런 게임에서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는 뻔하다.

프로는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도 팔지만 아마추어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기는 좋은 방법은 진짜 쌀 때 사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최근 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싼 종목들은 많다. 인기 경쟁에 밀려서 내재가치 이하에서 머무는 것들도 숱하다.

그중에는 전도가 유망한 것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문제는 단기간에 소폭의 이익을 노리느냐, 아니면 5년 이상을 두고 배 이상을 기대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호흡을 길게 하면 새로운 투자대상이 보인다. 한 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강북 아파트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템플턴의 이머징마켓 부문 대표인 마크 모비우스의 얘기는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돈을 갖고 있을 때가 이머징마켓 투자에 가장 적합한 시기다.”

이머징마켓의 매력을 강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긴 호흡으로 본다면 다양한 투자대상에 모두 적용되는 얘기가 아닐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23호(08.04.1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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