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한국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배경에는 지난 20여년 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 사람은 그 성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커지져가는 깊은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고 2일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아시아판에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시위는 더 깊은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제하의 서울발 기사에서 지난 2개월간 이어진 한국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2일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한국 최대 규모의 제조업체 노동자 13만6천명이 파업에 참가함으로써 더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반정부 시위는 표면적으론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같은 특정 현안을 둘러싼 것이지만 그 근저엔 더 폭넓은 문제, 즉 지난 20년간 진행된 민주화 이후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잘될 수 있는(get ahead)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소규모 아채가게를 운영하면서 반정부 시위 참여 여성권익 옹호단체에서 활동중인 윤금순(48) 씨는 인터뷰에서 "민주화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며 "모든 부는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얻는 게 너무 적다"고 말했다.

윤 씨는 "(민주화가) 국민 스스로 공직자를 선출할 수 있게 해줄 뿐아니라 모든 한국인을 다 함께 부유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했었다"면서 그러나 싼 수입과일 때문에 장사는 어려워지고 있으며 쌍둥이 자녀를 내년에 대학에 보낼 수 없을 지 몰라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이번 시위는 지난 4월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서 시작됐으며 "한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불안하다고 `묘사(portray)'하는 반면 정부와 과학자들은 `좋다(fine)'고 말하는 가운데 시위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더 폭넓게 비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최근 시위는 소수의 명문 대학 졸업자들에게 좋은 직장과 공직에 더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보상해주는 사회체제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눈부시게 성장을 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을 탄생시켰으며 금 모으기로 외환위기를 극복해 냈으나 지금은 경제적 분배 문제가 부각돼 있으며 한국인의 빈부 격차는 서구 유럽과 비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 신문은 밝혔다.

상대적 빈곤계층 비율은 2005년에는 15%까지 올라 1990년대 중반 9%에 비해 훨씬 높아졌으며 올해 실시된 메릴랜드대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78%의 한국인들이 몇몇 소수의 이익단체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문은 또 임금을 덜 받고 보험이나 휴가, 연금이나 훈련 등에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쉽게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해 한국인들은 명문 고교나 대학에 들어가 성공의 티켓을 따내기 위한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부모들은 10대들을 자정까지 잡아두는 학원에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면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나아가 이 같은 사회적 압력은 잘 사는 계층마저도 시위에 나서게 하고 있다고 밝힌 이 신문은 여러차례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47세의 한 투자자문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투자자문사는 두 자녀에게 엘리트 계층 진입 기회를 주기 위해 매월 3천달러를 학원에 쏟아붓고 있으나 문득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집권 초기부터 학교간 경쟁력 향상을 꾀한다면서 사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고 WSJ은 밝혔다.

kyunglee@yna.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