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는 읽으실 때 혹시라도 단순히 천재소년이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왔다는데 촛점을 두지 마시고 이 청년이 어떻게 천재로 대접받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두고 읽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저희 큰애가 초등 1학년인데 공부를 봐주면서 느끼는게 자꾸만 단순하게 문제를 풀어서 좋은 점수 받는데만 초점을 두는게 아닌가 싶고,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좀 들었던 차에 이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원리"를 안다는게 참으로 중요하다. 처음에 좀 점수를 낮게 받더라도 원리를 알아가도록 해주는게 중요하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통해 자녀들에게 적용할 점을 찾아보시면 좋을 같습니다. 아주 유익한 기사라고 여겨집니다.


[조선일보   2007-11-27 07:44:56]
 

‘한국의 빌 게이츠’ 꿈꾸는 김지원씨 지난달부터 병역의무 MIT 학부·석사를 만점 학점으로 경악시키고 MS와 구글을 애태운뒤… 박사에도 줄까말까한 고액연봉 마다하고 귀국 “중학교땐 전교 60등… 과학고땐 전체 꼴찌도”

마 이크로소프트(MS)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벌었다. 지난 2000년 서울의 한 소년도 같은 나이에 이미 회원 수 400명이 넘는 하이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동호회를 책임지고 있었다.

7년 후 그 소년은 미 MIT 사상 처음으로 학부·석사 과정을 모두 5.0 만점으로 졸업했다. 지난달 삼성종합기술원에 병역특례연구원으로 입사한 김지원(金智元·22)씨가 주인공.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던 소년은 이제 MS를 뛰어넘을 계획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 지원씨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삼성이건희장학생’ 1기로 MIT에 입학했다. 컴퓨터·수학 복수 전공으로 학부·석사를 각각 3년, 1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학부 졸업 후 미 최고 엘리트 사교 모임인 ‘파이 베타 카파 클럽(Phi Beta Kappa Society)’에도 뽑혔다. 그가 밝힌 성공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한 것’.

그는 지금도 MS나 구글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그쪽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등 스카우트에 적극 나선 상태지만 그는 거절했다. “MIT 재학 중 MS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엑셀(Excel) 개발자로 일하기도 했어요.” 지난 9월 석사학위를 받은 후 구글·MS에서 박사학위자 이상에게도 줄까 말까 한 고액 연봉을 제의 받았지만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귀국했다.

“구글이 가장 멋진 회사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기술을 만들어냈잖아요. 저도 뭐든 그런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는 화려한 미래를 위해 스스로 진군(進軍) 중이다. 자진 귀국한 것도 병역의무를 마쳐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 아버지 김병주씨는 “구글을 뛰어넘을 몇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석사 논문 주제인 ‘로봇’이 목표냐”고 묻자 “전공인 수학과 컴퓨터를 활용하면 할 만한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스스로 어디까지 개척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성 주변에서는 어쩌면 MS나 구글을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온 터라 미래 가능성 또한 크고 넓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 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성적이 전교 60등에 그쳤다. 강북에서 그 성적으로 과학고에 들어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학년 때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고는 이왕이면 좋아하는 컴퓨터를 계속 공부해보자고 과학고를 가기로 했어요.”

당 시 최연소 한국 대표에 대회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웠다. 당시 베이징(北京)대회에선 이전과 전혀 다른 형식의 문제가 나와 모두들 고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늘 혼자 문제를 해결해왔기 때문에 어려운지도 몰랐다”고 했다.

“지 능이 평균 이상은 되겠지만 천재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아요. 다른 점이라면 뭐든 스스로 답을 찾는 게 습관이 됐을 뿐이죠.” 그는 과학고 입학 후 첫 시험에서 전체 꼴찌를 했다. “그런데 반에서 1등 하던 강남 사는 친구에게 문제의 원리를 물었더니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늘 주어진 대로만 해오던 친구들이라 새로운 상황에선 헤매요.”

반 면 그는 “이런저런 연구를 하려면 어떤 강의를 들어야 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덕분에 1학년 때부터 미디어 랩 등 MIT의 여러 연구소에서 교수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젊은 영 파워의 미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영완 기자(글) ywlee@chosun.com ]

[전기병 기자(사진) gibong@chosun.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