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7-05-31 14:58:53] 


[중앙일보 이지은] #1. 금융 회사에서 일하는 윤재윤(가명.36) 과장은 A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더 나은 급여 조건과 복지 혜택이 마음에 들었다. 필기시험과 두 차례의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만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전에 일하던 곳의 김모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재윤씨, A사에 지원했다며? 이것저것 묻길래 내가 재윤씨 능력있고 인간관계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했으니 걱정 마." "아! 다행이다."윤 과장은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 유통 회사에서 근무하던 김성탁(가명.35) 대리는 상사와의 마찰이 잦아 이직을 결심했다. B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한 달 후 최종 면접 통보를 받았다. 김 대리는 '곧 떠날' 회사에 애정이 식었겠다 새 직장도 구한 거나 다름없겠다 '개점 휴' 상태에 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옮길 건데 뭐…."김 대리는 병가를 내는 등 결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사무실 동료들은 그가 내팽개친 일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빴다. "저 친구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회사 옮긴다나봐""그래도 그렇지 맡은 일은 끝까지 다 해야 하잖아" 라며 뒤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연히 김 대리의 깨끗하지 못한 뒤끝은 B회사의 인사채용 담당자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기업이 전 직장의 상사.동료.부하 직원을 통해 지원자의 업무능력 및 근무 태도, 조직 적응력, 대인관계, 이직 사유 등을 검증하는 평판조회(Reference Check)가 이제 채용의 마지막 관문처럼 돼버렸다. 이력서만으로는 지원자의 자질과 인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허위와 거짓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최근 국내 기업들이 경력 사원 공채에서 평판 조회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이력서나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평판조회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왜 평판조회가 늘어나는가. 이에 대한 대응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내 평판은 어떻게 조회되는가.

◇'하자' 있는 사람은 원천 차단

기 업 인재 채용에는 '3의 법칙'이 있다. 최소한 3차례 면접을 보고 각기 다른 3곳의 장소에서 만나고, 3명 이상이 면접에 참여하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예전 동료나 상사 3명에게 지원자에 대해 물어보라는 것. 이력서 제출, 필기시험, 1대1 면접, 집단 면접 등 다양한 단계로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에서 평판조회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서류 검토와 30분 내지 1시간 정도의 면접만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제대로 판별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예전엔 사람을 판단하는 절차는 단순한 이력서나 전 직장에서의 근무 확인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후보자의 품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십, 도덕성 등을 조사, 직장 내 인간관계나 고객과의 관계, 회사에 대한 책임감, 직무방식이나 조직운용 방식, 실적과 업적 등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전직장에서의 모든 것을 파악해 회사에 유.무실로 손해를 끼칠 지원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평판 중요

핵심 간부를 외부에서 영입할 때 평판조회는 '필수'다. 부장급은 임원인 직속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화의 기술이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또 조직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아는 능력, 결정된 사항에 대한 추진력, 후보자의 대인관계와 도덕성에 특히 관심을 갖는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대인관계가 좋지 못하면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최고경영자(CEO)를 스카웃하는데 까지 평판조회가 이용되고 있다. 스카웃 제의를 하기 전 그 사람의 실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도덕성 등을 그가 거쳐온 전 직장 동료 및 상사 50여 명에게 물어 최고경영자로 영입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와야 비로소 손을 뻗치는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직장인은 평판을 남긴다

직장을 옮기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상사와의 갈등을 이직 사유로 꼽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절대 싸우고 나오지 말라''뒷모습을 아름답게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이직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다른 조직원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또 전 직장 상사나 동료를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법이다. 업무 인수인계는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중간에 관두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평판은 금방 업계에 퍼지게 마련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이직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이직자의 공백을 메워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직할 때 같은 업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회사 기밀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닌다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상사나 동료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깨끗이 풀고 가야 한다. 응어리가 남아있는 동료나 상사에게 평판조회가 들어온다면 좋게 말할 리 만무하다.

이직이 확정됐다면 떠나기 전 동료에게 술 한잔 사고 가는 센스도 필요하다. 이직한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 다른 회사로 옮길 때 분명 지금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의 평판을 묻는 전화가 걸려올지 모른다. 헤드헌팅 커리어 케어의 신현만 사장은 "한국 사회는 매우 좁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돼 있다"며 "떠나는 뒷모습을 아름답게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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