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기사입력 2008-01-04 03:16 |최종수정2008-01-04 08:02 기사원문보기

지 난 1일 서울 명동의 노점상에서 미국인 사라 파이어보우(24)씨가 양말을 고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한 여성이 파이어보우씨 어깨 밑으로 팔을 뻗어 물건을 집고 있다. 파이어보우씨는“한국인은‘미안하다’는 말 없이 부딪치고 끼어드는 일이 많다”고 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외국인이 살기 힘든 한국 [2] 나와 다른 남에 대한 배려 인색

초면에 “결혼했냐, 애인있냐” 시시콜콜 물어봐

비빔밥에 소고기 빼달라고 했더니 “그냥 먹어라”

샤워할 때 힐끗힐끗 봐 상대방에 모욕감 주기도


캐나다인 데이비드 카바나흐(34·영어강사)씨는 매일 아침 서울 도봉구 집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할 때마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옆에서 함께 샤워하는 한국인들이 꼭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그의 하체 특정 부위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그는 “그럴 땐 얼마나 창피하고 민망한지, 꼭 원숭이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인 아폴린 카롤(38·주부)씨는 한국 사람들이 다가와 “귀엽다”며 일곱 살 딸, 두 살배기 아들의 볼과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듬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2년 전엔 병원 대기실에서 환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갓 4개월 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몹시 당황했던 일도 있다. 카롤씨는 “나쁜 뜻이 없고, 그것이 한국의 문화라는 것도 알지만 그럴 때마다 난 너무 불편하다”며 “어른이 예쁘다고 만지지 않는 것처럼 아이도 인격이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와 다른 남, 배려해주길

한 국에선 으레 통용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과 행동이, 글로벌(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무례한 일이 있다. 우리와 다른 남을 인식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50여명의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 중엔 ‘내가 편하고 익숙하면 남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인 피터 초울라(프리랜서 기고가)씨는 외출할 때마다 직접 만든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닌다. 한국의 식당에서 매번 부탁하고 승강이하기 지쳤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지난해 가을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하며 소고기와 계란을 빼달라고 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소고기와 계란이 섞여 나왔다. 식당 직원은 “바빠서 깜박했는데, 비빔밥에는 소고기와 계란이 들어가야 더 맛있으니 그냥 먹으라”고 했다.

브랜든 테일러(23·주한미군)씨는 식당에서 쫓겨난 경험까지 있다. 지난해 경기도 평택의 한 식당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며 “계란을 빼달라”고 했는데, 역시 계란이 섞여 나왔다. 그는 “미국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음식을 다시 해달라’고 했는데 식당 주인의 반응이 상상 밖이었다”고 했다. 식당 주인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며 그에게 나가라고 한 뒤 문 앞에 소금까지 뿌렸다고 한다. 테일러씨는 “너무 모욕적이어서 하루 종일 불쾌했다”고 했다.

외국인 중엔 이슬람·힌두교 등 종교적 배경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거나 신념 때문에 채식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 인구의 약 1% 가량이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외국인이 많다. 호주인 채식주의자 일레인 로리(39)씨는 “한국인들이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 영역 침범엔 신중해야

미국인 펠리시아 쉘튼(여·36·영어강사)씨는 “서울이 인구가 많고 복잡한 도시라는 걸 알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부딪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신체적으로 부딪치는 것을 아주 꺼린다”고 했다. 매일 아침 지하철로 출근하는 미국인 스테펜 뷰(35·고려대 국제어학원 교수)씨는 “사람들이 밀치고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 없이 무표정하게 지나가거나,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을 때 속상하다”고 했다. 여의도의 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영국인 스튜어트 데넷(33)씨는 “영국에서 출판된 한국 가이드북에는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부딪치고 팔꿈치로 미는 사람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지 난해 9월 한국에 온 호주인 잭 스몰우드(38·외국계 은행 직원)씨는 “회사 동료들과 첫 회식 자리가 정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결혼은 했느냐, 애인은 있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스몰우드씨는 “첫 만남에서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사적인 얘기들을 너무 꼬치꼬치 물어서 난감했다”고 했다.

● 상황별 글로벌 에티켓 

몸에서 50㎝둘레 안쪽은 ‘개인공간’… 침범 말아야


식사 대접하더라도 마음대로 메뉴 정하면 큰 실례


전 문가들은 ‘글로벌 에티켓’의 핵심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므로 생활 예절도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면 큰 실례를 범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주요 상황에서의 글로벌 에티켓을 소개한다.

◆신체 접촉이 있을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인들은 몸에서 약 50㎝ 둘레 안쪽을 ‘개인공간’으로 여긴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때는 그 이상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얼굴을 가까이 대거나 웃으면서 어깨나 무릎을 치면 상대가 당황할 수 있다. 남을 앞지르거나 실수로 부딪쳤을 때는 사과해야 한다.

◆어린 아이를 대할 때

한국에선 낯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주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외국인 중에는 세균 감염이나 성추행에 민감한 사람이 많아서 낯선 사람이 아이 몸에 손을 대면 몹시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 “예쁘다”는 한두 마디 칭찬만 하는 것이 좋다.

◆식사할 때

우 리는 식당에서 한 가지 메뉴로 통일하는 데 익숙하지만, 외국인들도 그런 건 아니다. 자신이 식사를 대접하더라도 마음대로 메뉴를 정하는 건 큰 실례다. 초대 받은 사람의 뜻을 물어서 정해야 한다. 요리를 고르기 전에 상대가 채식주의자가 아닌지, 알레르기나 종교적 금기 때문에 피하는 음식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테이블에 휴대전화를 올려 놓으면 “당신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프랑스의 일부 고급식당에선 입장시 휴대전화를 카운터가 맡아 보관한다.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목 욕탕이나 수영장에서 상대가 불편할 만큼 빤히 쳐다보면 실례다. 흉터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 범해서는 안 될 무례한 일이다. 일본의 대중탕·온천·사우나에서는 동성끼리도 신체 중요 부위가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다.

◆초대 받은 자리에서

남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 일찍 도착하는 것이 오히려 결례다. 상대방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각이나 5분쯤 뒤에 간단한 선물을 갖고 가는 것이 좋다. “맛있다”는 칭찬을 하고, 다음날 전화나 카드로 고맙다는 뜻을 전하면 금상첨화. 한국식으로 내 수저로 집은 음식을 상대에게 권하거나,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남의 부엌에 들어가면 실례다.

도움말: 최정화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최애경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교수, 정기옥 서원대 초빙교수(전 외무부 의전장), 서대원 광운대 석좌교수(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류정 기자 well@chosun.com]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

+ Recent posts